기본적으로 소설의 플롯보다는 발상과 설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저로서, 사실 줄거리의 복잡성이라는 요소는 별다르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흥미로운 발상에 기반을 둔 글이라면 그 외의 부분이 아무리 빈약하다고 해도 다 읽어 버리는 성격이니 말이지요. 애초에 문학이란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초현실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SF나 환상 문학을 즐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화를 자주 읽게 되기도 합니다. 비교적 어린 연령층을 대상으로 쓰이는 글이기 때문인지 굳이 특정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 내는 작품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동화를, 특히 그 중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진 환상 동화를 읽다 보면 평면적인 등장 인물들의 성격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됩니다. (물론 환상 문학 자체를 독립적인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저는 이러한 분류에 별다른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환상 문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문학으로서 발달한 면이 강해 그만큼 추상화된 동시에 단순화된 세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 대신에 1980년대 이전에 활약한 작가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점은 더욱 확실해지게 되지요. 각각의 인물들이 행동하는 방식 자체가 선이나 악으로 쉽게 규정될 수 있는 경우라면 이런 평면성은 작품 내에서 그나마 개연성을 가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작품의 전개 속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더군요.
그런 여러 글들 중 제게는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Susan Cooper의 The Dark is Rising 시리즈였습니다.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해 톨킨의 제자라고도 알려져 있는 Cooper는(사실 '제자'라고 표현하는 부분에는 약간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분명히 Cooper는 옥스퍼드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기는 했습니다만, 특별히 학문적인 작업을 수행하지 않아 특정한 교수의 제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겠군요;) 몇몇 환상 동화들을 저술했지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The Dark is Rising이며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영화로 각색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아서 왕 전설과 웨일즈 지방의 민담들을 바탕으로 해 The Dark이라는 상당히 간명한 이름으로 묘사되는 세력의 위협에 대항하는 The High Magic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전 문학의 성격상 전설이나 민담 자체는 작품의 전개 안팎에서 모두 선악의 구분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심지어는 구전 문학에서 그대로 차용한 인물에서조차 그런 일관성이 드러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저는 석연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인물의 도덕적 입체성, 즉 moral complexity의 결여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 작품에서 그다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동화에서 moral complexity를 이야기하는 것에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는 문제는 제쳐 두고라도, 두 진영 사이의 전투를 특별히 선악이 결부되지 않은 두 개의 거의 동등한 수준의 힘을 지닌 진영의 대결로 바라볼 경우,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은 분명히 단순한 선악의 잣대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놓고 벌이는 전투에서 상대방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둔다는, 상당히 능력자물스러운(...뭐 능력자물이지만요) 줄거리를 바탕으로, 어쩌다가 끼어드는 평범한 인간들을 때로는 이용하고 때로는 도우면서 양쪽의 '영웅'들이 대결을 벌인다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동화인 만큼, 많은 수의 환상 소설에 등장하는 피투성이 묘사보다는 수수께끼라거나 신비로운 유물의 힘과 같은 간접적인 대결이 더 자주 등장합니다만, 결론적으로 대결 구도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요.
단지, 당황스러운 점은 도덕적인 입장에서 볼 때 양쪽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Dark(닭일까요?)이라는 세력이 세계를 손에 넣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특별히 작중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로 Old One들의 활동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있는지는 작중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 점에서, 자신들을 목격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멋대로' 고친다거나, 뉴베리 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2부 The Dark is Rising에서 Old One들에 의해 수단으로 이용된 Hawkin과 같은 인물의 예를 생각할 때, 주인공들을 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들과 대조되는 Dark은 인간에게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인간이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을 먼저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시리즈물은 선악의 역할이 역전된 듯한 느낌을 주더군요.
이 동화를 통해서 잠시, 저는 동화에서 도덕적 입체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잡상했습니다.; 단순한 선악의 대립에 대해 독자들은 도덕적 입체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리기 쉽습니다. 이에 비해, 실제의 인간에 가까운, 도덕적인 고민을 가지는 인물들이 등장할 경우 독자는 현실감을 느끼게 되지요. 이 시리즈에서 도저히 선하다고 볼 수 없는 '선한' 세력이 등장하게 된 이유를 이 점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형이 도덕적인 입체성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별로 긍정적으로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선악과 같은 틀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다른 환상 동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민담에서 그 소재를 찾았기 때문에 민담이 강조하는 비교적 단순한 선악 사이의 대결 구도에 어쩔 수 없이 얽매이게 되고, 결국 도덕적으로 근본적으로 입체적인 두 세력의 인물들 가운데 한쪽 세력에만 선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구전 문학의 평면적인 등장 인물들과 현대 문학의 입체적인 등장 인물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전혀 선하지 않은 선한 영웅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신화와 전설을 이용해서 어느 만큼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환상 문학을 쓸 수 있는가의 물음에서 많은 작가들이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